2000.11.30. 공무원 명예퇴직을 하고, 부산시에서 설립한 중소기업지원센터에 입사했다. 공무원의 신분으로 몇 달간 중소기업지원센터 설립준비단에 근무하다가 설립과 동시에 소속을 바꾸면서 신분도 민간인으로 바꾼 것이다. 중소기업지원센터는 재단법인으로서 부산에 있는 기업들을 지원하는 것이 주요기능이었다.
부산시에서 이 센터를 설립한 것은 각종 법률과 규정에 메어있는 공무원 틀에서 벗어나 보다 효율적으로 경영적 마인드를 가지고 운영토록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운영비와 사업비는 전적으로 부산시에 의존하였으므로, 시청에 예속될 수 밖에 없었다. 초창기 직원은 20여명, 그 중 10명은 공무원 중에서 희망신청을 받아 선발했고, 나머지는 공개 채용된 직원들이었다.
공무원에서 퇴직하고 넘어 온 직원들에 대해서는 한 직급 높은 보수를 보장했다. 나 역시 조금 나은 보수에 끌렸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공무원을 계속 해봐야 늘푼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등바등해 봐야 전도는 뻔해서 삶의 여유를 갖고 싶었다. 또한 기업을 상대하는 기관인 이곳에서 실물경제를 익히다보면 다른 진로도 꾀할 수 있으리라 보았음이다.
우선 퇴근시간이 빨라졌다. 시청에서는 통상 8시 전후에 퇴근했고, 바쁠 때는 10시를 넘기기도 예사였다. 이곳에서는 어수선했던 설립 초기를 넘기고 어느 정도 조직의 틀이 잡혀가면서 6시만 되면 퇴근할 수 있었다. 당시 중소기업지원센터가 녹산산업단지에 있어서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으니 자연히 술자리도 뜸해졌다. 건강을 챙기면서 가정도 돌볼 수 있었다.
새벽에 가까운 학교 운동장에 나가 뛰기 시작했다. 몇 개월쯤 지났을까. 어느날 운동장을 돌고 있는데 코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매캐하게 느껴졌다. 조금 흐렸던 날이었고 도시고속도로 바로 옆에 붙어있는 초등학교였다. 매연을 애써 마시는 것 같아서 다음날부터는 초등학교보다 지대가 조금 높은 고등학교에서 뛰었다. 그랬는데 그곳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찬가지가 되었다.
동네뒷산에 올라 다녔다. 산 위에 올라서면 상쾌한 공기가 흘렀다. 아래쪽 동네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러던 어느날 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광경에 깜짝 놀랐다. 밤새 내린 비가 그친 날이었다. 시커먼 구름 같은 것이 가야대로 도로를 따라 두툼한 띠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내가 저 혼탁한 공기를 마시면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중금속 물이 담긴 어항 속에 사는 금붕어처럼.
2004. 5. 5.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동네뒷산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먼 산에도 가는 산행을 한 것이다. 당시에 휴일날이면 문현동 시민회관 앞에 많은 버스가 줄을 서 있었다. 얼마간 돈을 받고 산행을 안내하는 소위 가이드산악회들이었다. 그 버스를 타고 산을 찾아다녔다. 맨 처음 합천 황매산, 다음에 지리산 바래봉, 그다음 소백산 비로봉...
그렇게 다니다가 그해 여름 설악산으로 갔다. 설악산은 멀다. 그때는 토요일휴무제가 확산되지 않았을 때라, 토요일 밤에 출발해서 일요일 밤에 부산에 도착했다. 버스에 앉아가면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8시간 넘게 힘든 산행을 했다. 집에 오니 밤 1시가 넘었고 샤워를 하고나니 2시였다.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제대로 출근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다. 그랬는데 어느 날보다 일찍 잠이 깨었고 몸은 노곤한 데 하나 없이 날아갈 듯 가뿐했다. 참으로 신기해서 그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설악산에서 걸었듯이 8시간 동안 다른 데서 걷거나 그만큼 힘들게 몸을 움직였다면 다음날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설악산은 첩첩산중에 높이 솟아있는 산이다. 그 청정한 공기 속에서 8시간이나 가픈 호흡을 내 쉬고 들이켰으니 내 몸 안에 있었던 오염물질은 남김없이 배출되고 깨끗하게 정화되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