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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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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 이야기 마눌은 평생을 전업주부로 지냈다. 결혼 전에도 직장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래선지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고 내가 얼마나 훌륭한(?) 남편인지도 모른다. 괜히 투덜대는 마눌을 딸이 나무랬다. “엄마는 뭐가 그래 불만이고. 내가 사회에 나가보니깐 엄마만큼 편한 사람은 세상에 없더라. 아빠 같은 사람이 어딨노.” “흥, 니 아빠가 이만큼 사는 건 다 내 덕(분)이다. 내가 복이 많아서 다 내 복으로 니 아빠가 행세하면서 다니는 거다.” “아하하! 엄마 너무 웃긴다. 하하하, 엄마, 그라지 마라.” 마눌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살을 부린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2014년 말에 내가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다. 밥상을 들고 올 때마다 ‘애고고, 애고고’하는 신음소리가 나날이 커져갔다. 30..
아들 이야기(3) 아들이 대학 1학년 때 일입니다. 학교에서 편지가 와 열어보니 학사경고장이더군요. 아들을 불러 앉혔습니다. "야, 이놈 자석아. 내가 언제 니보고 공부 안 한다고 뭐라 한 적 있드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이다 아이가. 그래, 뭣 때문이야. 이유를 대 봐." 아무 말없이 고개만 수그리고 있던 아들은 내가 계속 다그치자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저어... 여친과 헤어졌거든요. ㅜㅜ..." 순간 황당했습니다. 아직 꼬맹이로만 여겼던 아들놈이 벌써 연애하는 나이가 됐고, (그래봤자 대학 1학년) 그리고 실연을 한 겁니다. "어어~. 그으래, 알았다. 알았어. 됐다. 그만 니 방에 건너가 봐라." 그랬던 아들이 오늘 결혼식을 했습니다. 코로나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에 말입니다. 지난 3월달에 한..
아들 이야기(2) 아들아! 우리 선조님들은 참으로 훌륭한 분들이셨단다. 비록 이름 없는 민초로 한 평생을 보낸 분들이지만 오늘날 너와 내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게끔 해 주셨다. 이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 얼마 전 영화 국제시장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나서 앞 세대의 가난과 그들의 삶, 처절했던 생활에 눈물까지 보였던, 그래서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감상은 조금 다르다. 영화는 그 시절 그때 평범한 서민들 삶을 애길하려 했지만 내가 보기엔 영화 속 주인공 덕수는 서민이긴 하지만 서민 중에서 가장 선택 받은 그룹에 속했다고 해야 할 사람이었다. 그때 서독 광부는 아무나 갈 수 없었다. 학식도 있고 신체도 아주 강건해야 응모할 수 있었고, 수많은 응모자 중에..
아들 이야기(1) 아들은 딸보다 세 살 아래다. 어렸을 때 시샘이 많아서 누나가 그림을 그리면 같이 그리려고 해서 학용품도 같은 걸 사 주어야 했다. 덕분에 글자를 빨리 깨쳤는지 학교 공부는 곧잘 한 것 같다. 꼬마 때는 매일같이 동네 만화방을 들락거렸다. 나는 만화책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루한 동화책보다 재미있는 만화책이 훨씬 낫다. 당시로는 큰돈을 들여 ‘드래곤 볼’이라는 만화책을 전집으로 사 줬다. 비디오가게에도 단골손님이 되었다. 보고 싶은 만화영화는 거의 다 빌려봤을 거다. 비디오기기가 고장이 났을 때는 아주 안달을 해댔다. 비디오기기는 아들 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돌려댔던지 자주 고장이 났다. 몇 번 수리를 하다가 새것으로 사주어야 했다. 그러다가 게임으로 갈아탔다. 게임 역시 초창기라 게임기기와..
딸 이야기(3) 딸은 28살에 결혼을 했다. 오빠(요즘 애들은 모두 지 남편을 오빠라 한다)와는 같은 대학 다닐 때 알아서 8년 동안 교제를 했다고 했다. 사귀는 놈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모르는 체 했고, 양가 상견례 때 처음 보았다. “너 임마. 통닭 이천 마리 먹고 시집가는 거다. 맞제?” “에~이. 아빠. 그 정도는 아니다.” “뭐가 아이라. 1주일에 2, 3번은 시켜 먹었으니 1년에 100번 이상 아니냐. 20년만 따져봐라. 그보다 훨씬 더 넘는다.” “헤헤, 아빠도 참. 그란데 아빠, 양복 한 벌 해 주까?” “필요 없다. 느그 아빠 양복 많이 있는 거 모르나.” 결혼식날 내가 입을 양복을 해주겠다니, 유아원 교사의 박봉에도 결혼자금을 모아놓았다는 얘기다. 하긴, 지 차 기름 넣을 때도 내 카드를 빌려갔었다. ..
딸 이야기(2) “아빠, 내 무시하지 마라. 나도 상위권이다!” 내 눈앞에 성적표를 흔들면서 딸은 아주 자랑스럽게 큰소리를 쳤다. “이 자슥이 말버릇하고는, 뭔데?” “헤헤, 잘못 했써요. 아빠가 나를 깔보니까 그렇지. 내 이번에 우리 반에서 13등 했거든요.” “으음~, 13등? 조금 한 거네. 물론 아빠는 1, 2등만 했지만...” 나는 고등학교니까 한 반에 5~60명은 되는 줄 알았다. 그랬는데 성적표를 보고 한참을 웃었다. "13/39", 39명 중에 13등을 한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상중하로 나누면 어쨌거나 상위권에 드는 셈이니까. 대학입시를 앞두고 딸은 유아교육과를 가고 싶어 했다. “뭐, 유치원선생? 그거 D업종이고 극한직업 아니냐. 그러지 말고 적당한 데 다니다가 시집이나 빨리 ..
딸 이야기(1) “아빠, 내 저거 사줘.” “그건 안 돼!” 아빠의 단호함에 흠칫한 세 살배기 딸은 바로 타협안을 내놓았다. “아빠, 그라믄 저거 내 시집갈 때 사 줄 거제?” “흐흐~, 그래, 니 시집갈 때 사 주께.” 딸은 금방 표정이 밝아지면서 어처구니없어 하는 아빠에게 안겼다. 이런 성정은 타고나는 것일까. 억지를 부려도 통하지 않을 것 같으면 미련없이 마음을 바꾼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러면서도 가능한 건 모두 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 얻어낸다. 핸드폰이 대중화 되기 시작했을 때다. 퇴근하고 왔더니 딸이 거실에 드러누워 땡깡을 부리고 있었다. “아빠도 (핸드폰) 없는데, 중학생이 무슨 핸드폰이 필요하노!" 아내의 타박에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 반에서 핸드폰 없는 ..
공무원을 퇴직하고 2000.11.30. 공무원 명예퇴직을 하고, 부산시에서 설립한 중소기업지원센터에 입사했다. 공무원의 신분으로 몇 달간 중소기업지원센터 설립준비단에 근무하다가 설립과 동시에 소속을 바꾸면서 신분도 민간인으로 바꾼 것이다. 중소기업지원센터는 재단법인으로서 부산에 있는 기업들을 지원하는 것이 주요기능이었다. 부산시에서 이 센터를 설립한 것은 각종 법률과 규정에 메어있는 공무원 틀에서 벗어나 보다 효율적으로 경영적 마인드를 가지고 운영토록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운영비와 사업비는 전적으로 부산시에 의존하였으므로, 시청에 예속될 수 밖에 없었다. 초창기 직원은 20여명, 그 중 10명은 공무원 중에서 희망신청을 받아 선발했고, 나머지는 공개 채용된 직원들이었다. 공무원에서 퇴직하고 넘어 온 직원들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