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내 저거 사줘.”
“그건 안 돼!”
아빠의 단호함에 흠칫한 세 살배기 딸은 바로 타협안을 내놓았다.
“아빠, 그라믄 저거 내 시집갈 때 사 줄 거제?”
“흐흐~, 그래, 니 시집갈 때 사 주께.”
딸은 금방 표정이 밝아지면서 어처구니없어 하는 아빠에게 안겼다.
이런 성정은 타고나는 것일까. 억지를 부려도 통하지 않을 것 같으면 미련없이 마음을 바꾼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러면서도 가능한 건 모두 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 얻어낸다.
핸드폰이 대중화 되기 시작했을 때다. 퇴근하고 왔더니 딸이 거실에 드러누워 땡깡을 부리고 있었다.
“아빠도 (핸드폰) 없는데, 중학생이 무슨 핸드폰이 필요하노!"
아내의 타박에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 반에서 핸드폰 없는 애가 여섯 명뿐이다!
으~엉, 여섯 명이다. 여섯 명! 사줘, 사줘, 사줘~어!”
엄마에게 떼를 써봐야 소득이 없다는 걸 잘 아는 딸은 아빠가 귀가하는 시간에 맞춰서 드러누운 것이다.
“그래, 없는 애가 여섯 명뿐이야?
그라믄 안 되지. 가자. 일어나라, 핸드폰 사러 가자.”
핸드폰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승용차 뒷자리에서 흐뭇하게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딸에게 물어말했다.
“영지야, 느그 반에 (폰) 없는 애가 여섯 명 아니고, 있는 애가 여섯 명이제?”
딸은 바로 자수를 했다.
"으~응, 으예. 에~헤헤헤...”
“아빠! 아빠! 일어나라, 어서! 내 큰 일 났다. "
곤히 자고 있는 새벽에 중학생 딸이 흔들어 깨웠다.
“내 차 태워줘야 된다. 6시까지 사직운동장에 가야된다. 어서, 어서!”
아이돌(H.O.T) 공연 보러 서울 가야 되는데 늦잠을 자고 말았다는 거다. 시간이 촉박해서 뭐라 할 틈도 없었다. 서둘러 도착한 사직운동장에는 서울 공연장에 가는 전세버스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고, 딸은 그 버스를 향해 냅다 뛰어갔다.
딸은 중학생 때부터 가수들 공연을 보러 다녔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여행을 즐겼다. 얼핏 딸이 만든 여행계획서를 본 적이 있었다. 3박 4일 일정에 계획서가 A4 용지로 6, 7장이나 되었는데, 차 시간은 물론 숙소와 밥 먹는 데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대학 때는 일본에도 몇 번 다닌 듯했다. ‘일본말도 할 줄 모르면서...’ 하고 물었더니, 인터넷을 통해 동행자를 찾았고, 그래서 매칭된 일본어 잘하는 언니와 함께 다녔다고 했다. 내가 퇴직하고 가족여행 갔을 때도 딸의 일정대로 다녔는데, 한 끼도 빼놓지 않고 지가 찜해 놓았던 맛집을 순례했다.
“이번에 영지 혼자 일본에 놀러가서 수경이(조카, 작은 누나 딸)집에서 자고 왔다네요.”
아내가 하는 말에 딸을 나무랐다.
“뭐시라, 니 임마, 수경이 귀찮게 하면 되나.”
딸은 입을 삐쭉이면서 한마디 던지고는 지 방으로 들어갔다.
“뭐~어, 내 어릴 때 보니깐 아빠가 수경이언니에게 용돈도 많이 주고 하더만,”
내가 베푼 것이 있으니, 아빠 딸인 지가 돌려 받는 건 당연하다는 투다. 허,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