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맡고 있던 신평소각장 문제가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국장도 바뀌고 과장도 바뀌었다. 1999.08.13. 정보통신담당관실로 전보되었다. 내가 원했던 부서였다. 막 인터넷이 시작되고 있었을 때라, 시대의 조류를 타고 싶었음이다.
정보통신담당관실은 전산직이 70여명, 행정직은 나 하나뿐이었다. 부산시청 홈페이지 관리업무를 맡았는데, 전산적인 부문은 몰라도 행정적인 관리는 아주 미흡했다. 시청의 모든 사무는 조례와 규칙, 훈령과 지침으로 규정되어 있음에 반해 홈페이지에 관한 것은 없었다. 내가 가서 홈페이지 관리규정을 만들었다.
전산직 직원들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았다. 컴퓨터 앞에서 혼자 일해 온 습관이 굳어서 그런 걸까. 자신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예산이 필요한 데 어디에 얼마나 쓰이는 것인지, 그 예산을 투입해서 사업을 하고나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한 장의 문서도 적어내지 못했다. 전산용어로만 몇 마디 얼버무리는데, 그것을 주워 모아 자료를 작성해야 하는 게 내 일이었다.
꼬치꼬치 캐물으면, “주무님, 이렇게 하면 다 압니다. 그냥 그렇게 쓰세요.”한다.
“무슨 소리야, 내가 못 알아듣는데 국장이 알아듣겠어, 시장이 알겠어. 요즘 신문에 관련기사가 가끔 나오는데, 그건 나도 알겠더라. 근데 니 말은 도통 모르겠어. 신문 좀 봐.”
시장 특별지시가 내려왔다. 디지털시대를 맞아 전 직원들에게 정보화교육을 계속 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부산시 정보화계획 수립을 병행하면서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전문가, 교수, 업계 인사들을 초빙하여 매주 한 차례씩 시청 직원들을 불러 모아 강의를 듣도록 했다.
강의자들에게는 파격적인 강사료를 주어 가면서 불렀지만, 강의내용은 그 유명도와 직위와는 달리 실망스러운 것이 많았다. 대부분 뜬 구름 잡는 이야기였는데, 가장 직위가 낮은 소프트웨어회사 팀장의 강의가 제일 알찼다. 실제적인 기술업무도 하면서 마케팅도 하고 있는 회사원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공무원이 퇴직하면 책을 많이 쓰는데, 그 독자는 주로 교수들이라 한다. 교수들은 이론은 알지만 실무에는 어둡다. 이론이 없으면 발전을 할 수 없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이론은 허상에 불과하다. 일본 교수들은 그걸 잘 알기에 공무원의 경험을 사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내가 공무원을 하면서 만난 우리나라 교수들은 대부분 실무적인 문제를 가볍게 여겼다. 소각장 반대 시위대 앞에 선 어느 교수는 쓰레기를 분리하면 80% 이상이 재활용품인데 부산시에서는 이러한 노력을 안 하고 환경오염이 많은 소각장만 짓는다고 선동을 해댔다. 또 어떤 교수는 폐선박을 구해서 그 위에 소각장을 짓자고 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들이었다.
시청 국장급 이상 간부들도 공무원교육원에서 2일 16시간의 정보화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마치고 나오면서 시장이 느닷없이 기념촬영을 하자고 했다. 부랴부랴 현관 앞에 앉을 의자를 내어놓는 중에 교육원에 들어가 카메라를 찾았더니 카메라는 있는데 필름이 없단다.
교육원장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거, 이거, 이런 건 주관부서인 그쪽에서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오. 이거, 이거, 어쩔 거요.”
교육원 직원에게 빈 카메라를 뺏어들고 나갔다. 그리고 시장과 간부들이 늘어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앞에 섰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모두 일어서서 나간 후 카메라를 돌려주면서 말했다.
“이러면 되지 뭘 그래요. 누구 사진 찾는 사람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