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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

신평소각장

부산의 각 기업체에서 배출되는 산업폐기물은 주로 울산공단 주변 민간처리장에서 처리되었는데, 기업마다 부담해야 하는 그 비용이 만만찮았다. 그래서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여 민간소각장을 건설하기로 했고, 한다하는 기업들이 주주가 되어 회사를 설립하고 사하구 신평동에 대형소각장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신평소각장이 사회문제가 되어 내 앞에 떨어졌다.

 

소각장 위치가 공단지역이지만 인근에 가까운 동네와 대단지 아파트가 있어서 그 주민들이 환경오염을 우려하여 들고 있어난 것이었다. 설치반대 시위가 잦아지고 그 규모가 점점 커지자 구의원들과 시의원, 그리고 국회의원까지 가세했다. 이들 의원들은 많은 주민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했다. 마이크를 잡고 설치허가를 한 시청을 성토하고 선동을 했다.

 

시위가 있는 날마다 현장에 나가서 취재를 했고 그 상황을 보고서를 써서 올렸다. 또한 주민대표들이 대책회의를 한다고 하면 그 회의장까지 찾아갔다. 처음에 회의장에 들어섰더니 대표 한 사람이 고함을 질렀다.

우리끼리 회의하는데 당신이 왜 여기 와! 당장 나가!”

예상했던 반응이라 바로 받아쳤다.

내가 여러분들 요구사항을 알아야 시장님께 보고하고 전달할 것 아니요.”

 

완강하게 적대하던 사람들이 만남이 잦게 되자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야아, 공무원이 이런 밤에 여기까지 오나. 고생이 많소.”

시위주민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시장 욕을 하는 중에도 저 뒤에 시청 담당자님도 보고 계시지만...”라고 했다.

 

주민들이 시청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더니, 기습적으로 시장실에 들이닥쳐 하루 종일 버티기도 했다.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들도 합세했다. 그러는 중에 기자와 얘길 하고 있는데 국회의원 보좌관이 끼어들었다. 내가 주민들 편과 반대되는 말을 하고 있다고 시비를 건 것이었다.

 

주민대표들과 국회의원 앞에서 고성을 질러대며 다투었다. 옆에서 뜯어말렸고 부시장 중재로 억지 화해를 했다. 주민들이 가고 난 뒤 우리 과장은 직원들 앞에서 흐뭇해했다.

그래, 담당자는 임재택이 같이 그래야 돼, 우리 간부들은 그럴 수가 없거든.”

후에 주민대표들도 내게 말했다.

우리 임주사. 조그만 사람이 깡이 엄청나던데. 놀랬어.”

 

480여억 원이 투입된 시설이었다. 회사에서는 유럽의 선진기술과 최신시설을 도입한 것이라 환경오염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고, 주민들은 믿을 수 없으니 무조건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환경운동가, 대학교수들이 동원되었지만 그들은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편에 서 있느냐에 따라 하는 말이 전혀 달랐다.

 

한 달에도 몇 차례나 회의를 했고 전국에서 이름난 환경전문가가 나서서 중재를 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검찰청, 안기부, 경찰청 등이 참여하는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몇 년 동안 주민동향보고, 관련자료 수집 및 보고서 작성, 회의 소집 및 기록관리 등 실무적인 업무는 오로지 혼자 떠맡아야 했다.

 

청와대, 국무총리실, 국회, 시의회, 검찰 등 자료를 요구하는 기관은 또 얼마나 많은 지, 수시로 찾아오는 기자들과 정보형사의 응대에도 많은 시간을 빼앗겼다. 그러면서도 기존에 하던 업무도 그대로 해야 했으니, 휴일도 없었고 밤낮도 없었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에게 가끔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이, 애들이 어렸을 때 얼굴은 생생하게 떠올리지만 조금 컸을 때의 모습은 아슴푸레함이다. 특히 딸보다 3살 아래인 아들은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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