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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

집에 갔다 옵시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마을이 밝았네...” 새마을노래의 첫 구절이다. 그전에는 도시에서도 새벽종이 울렸다. 쓰레기를 가지고 나오라는 신호였다. 그러면 집집마다 쓰레기통을 이고 들고 청소차가 대기하고 있는 큰 길로 나왔다. 쓰레기통을 청소차의 높은 적재함까지 들어 올릴 때는 먼지를 덮어쓰기 일쑤였다.

 

그랬던 것을 문 앞에만 내어놓으면 가져가는 지금의 문전수거제로 바뀌었다. 쓰레기는 쓰레기봉투를 사서 담아낸다. 쓰레기 용량만큼 봉투 값, 즉 수거비를 내는 것인데, 이걸 쓰레기종량제라 한다. 문전수거와 종량제는 동시에 시행됐다. 문전수거는 주민편의를, 종량제는 쓰레기 감량을 위한 것이다.

 

부산시 전역에 시행한 것은 1995년이었지만, 우리는 몇 년 전부터 준비했다. 이 일은 부산시 전체 주민의 생활을 바꾸는 일이었다. 구획이 독립된 영도구에 1년 먼저 시범적으로 실시하면서 매주 진행상황을 분석하고 보완해갔다. 주민 홍보부터 쓰레기봉투 제작, 분리배출 요일 지정, 청소차량과 수거인력 조정 등 수많은 부문이 있었고, 그 부문마다 해야 할 일이 엄청났다.

 

제일 단순했던 봉투 하나만 해도 봉투규격과 재질의 결정, 봉투제작업자 입찰 및 선정, 봉투가격, 유통체계, 판매소 선정 및 판매수수료 결정, 봉투위조방지대책까지 수립해야 했었다. 시장 지시에 의해 홍보만화도 제작해서 배포하기도 했다. 청소행정계 직원 모두가 매달렸다.

 

각자 담당업무와 관계없이. 매일 밤늦게 퇴근하는 것이 일상사가 되었으니, 우리는 퇴근하자는 말 대신 집에 갔다 옵시다.’라고 했다.

 

바쁜 와중에서도 해외견학의 기회가 있었다. 환경부에서는 각 시·도 담당자들을 모아 일본과 미국의 쓰레기 처리실태를 견학토록 했는데, 그 일원이 되었던 것이다. 통상의 해외출장이 그렇듯 관광적인 요소도 없지 않았지만 공무원은 출장 후 귀국보고서를 써야한다. 일본 도쿄와 다데시, 미국의 시애틀 등을 910일간 둘러보고 50페이지 가량의 귀국보고서를 썼다.

 

일본의 청소차량은 참으로 깨끗했다. 차량색상도 하얀 백색인데 티끌 하나 없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국민성이라 주민들이 내어놓는 쓰레기도 말끔했다. 물기 하나 없었다. 미국의 경우 겉치레에 신경 쓰지 않았다. 역시 스케일은 컸고 효율을 중시했다. 건식문화라서 쓰레기도 건조했다.

 

우리의 경우 매립장이나 청소차량의 악취가 항상 문제가 된다. 우리는 국이나 찌개가 있어야 하고, 남은 국물이 쓰레기에 섞여있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차이다.

 

좋은 데에 혼자만 다니지 말고요. 우리도 구경 한번 시켜주소.”

어느 구청 담당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시청에서도 고생들 하지만 현장을 뛰어다녀야 하는 자기들은 죽을 지경이라고, 숨 좀 돌릴 기회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었다. 다른 시·도를 한번 둘러보면 업무에 참고할 것도 많으리라.

 

타시·도 문전수거 실태확인계획을 수립했다. 각 구청에서 한 명씩으로 해서 내가 인솔했다. 대구와 대전, 서울을 돌아봤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청소차를 따라다녔다. 대구와 대전은 평지가 많고 길도 널찍했다. 서울 또한 고지대는 거의 재개발이 되어있었다. 이에 비해 아직까지도 우리 부산은 청소차가 들어가기 어려운 골목이 많고 경사도 심해서 인력이 많이 든다.

 

구청 직원들은 새벽잠도 못자고 이게 뭐냐고 투덜댔지만 그래도 저녁에는 술도 한잔 나누면서 회포를 풀었다.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게 소시민들이지만 가끔씩 숨 쉴 틈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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