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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

번잡했던 청소과 업무

과 내의 직원 배치는 과장이 정했다. 내가 청소행정계로 옮긴 것은 이쪽 일이 폭주했기 때문이었다. 쓰레기 매립장은 부산시의 큰 문제였다. 주민들은 자기들 지역에 매립장이 들어선다고 하면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들고 일어났다. 석대매립장 사용이 종료되자 시청에서는 주민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을숙도에 매립장을 조성했다.

 

을숙도는 매립장으로 부적합했다. 수면과 비슷한 높이의 모래땅에 지하실을 깊게 파고 쓰레기를 묻는 식이었다. 그대로 파면 금방 물이 고인다. 그래서 둘레에 차단파일을 미리 박아놓고 파야 했으니, 그 시설비와 관리비가 엄청났다. 매립용량도 작아서 쓰레기를 압축기에 넣어서 사각 육면체로 찍어내어 묻었다.

 

트럭 한 차 분량의 금광석을 녹여서 작은 성냥갑 크기의 금을 추출할 수 있다면 그걸 노다지라 한다고 했다. 우리 과 직원들은 쓰레기 처리비가 노다지보다 더 비싸다고 수군댔다.

 

다대와 사하지역 주민들이 들고 있어났다. 매립장 냄새가 낙동강을 넘어 올 뿐 아니라 자기들 지역에 모든 청소차량이 통과하게 되어, 생활환경이 악화되고 집값도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구의원과 시의원에 이어 국회위원까지 나서서 시청을 압박했다.

 

과장이 나를 불렀다. 어느 동사무소에서 국회의원이 주민들을 모아놓고 의정보고회를 한다고 하니, 무슨 말을 하는지 보고 오라고 했다. 동사무소 작은 회의실에는 2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국회의원은 지역발전 청사진을 열정적으로 피력하면서 매립장은 언제까지 반드시 이전시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보고회가 끝나자 국회의원은 주민 한 사람 한 사람마다 팔짱을 끼고 즉석사진을 찍어서 나누어 주었다. 졸지에 염탐꾼인 나도 주민이 되고 말았다. 사무실로 돌아와 과장에게 보고할 문서를 작성했다. 국회위원과 둘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도 첨부했다.

 

매립장 용량도 부족하고 새로 짓는 생곡매립장 공사가 늦어지자 비상이 걸렸다. 모든 구청과 동사무소, 학교 등 관공서마다 소형 소각기를 설치토록 강권했다. 매달 추진실적을 받아 성적을 매기고 모범시설에는 시청 간부들을 소집하여 견학시켰다. 재활용품 분리수거도 압박했다.

 

어떡하든 쓰레기를 줄여보고자 한 것이지만 소각은 대기환경이 문제가 된다. 더구나 소형 소각기는 연소가 불완전하다. 수백 개가 설치되었지만 몇 년이 안 되어 대부분은 고철이 되고 말았다. 농촌도 아니고 대도시에서 그것도 주택가에서 연기를 피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작은 소각기 한 대에 2, 3천만 원 정도였으니, 시대착오적인 시책 하나로 막대한 나랏돈을 날려버렸음이다.

 

생곡매립장도 계획에서부터 주민반대가 심했다. 주민들의 목소리 하나에 모두가 쩔쩔맸다. 어느 자리에서 주민대표 한사람이 담배를 입에 물자 국장이 얼른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어주었다. 시청 국장이라 하면 그래도 고위직인데 조폭두목 앞에 선 꼬봉같이 굽신거렸음이다.

 

막대한 돈을 풀어 주민들에게 이권을 왕창 안겨주고 매립장을 열었지만, 여전히 주민들이 왕이었다. 걸핏하면 매립장을 막아섰다. 쓰레기에 기름 같은 게 조금 섞였다고 청소차가 부어 놓은 쓰레기를 도로 담아가라고도 했다. 쌀에도 뉘가 섞여있는 법인데.

 

매립장이 또 막혔다. 청소차가 길게 줄을 서서 교통도 막히고 악취도 풍긴다는 게 그 이유다. 과장은 일단 사과부터 하고 길을 튼 다음 나에게 해결을 지시했다. 현장을 답사하고 실태를 파악했다. 통상 청소차는 매립장을 하루 두 번 다녔다. 그러자면 교통정체가 없는 새벽에 한 번 다녀가야 두 번째를 할 수 있다.

 

문제는 같은 시간대에 경쟁적으로 한꺼번에 차가 몰리기 때문이었다. 각 구청과 협의한 끝에 부산시내 청소차 몇 백대의 반입순서를 정하고 번호스티커를 붙이도록 했다. 이후 같은 민원은 반복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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