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온 이야기

부산시청에 들어가다

도로사업소에 근무한 지 39개월만인 19911017일 부산시청 민방위국 비상대책과로 발령이 났다. 비상대책과는 전시행정계획을 수립하고 전시훈련을 실행하는 것이 주기능이었다. 각 부서의 전시계획을 검토하고 타당성을 검증했다.

 

예를 들면 건설국에서는 전시에 민간인의 덤프트럭을 동원해야 하고, 보사국에서는 전시에 운영할 진료실을 사전에 지정하고 관리해야한다. 이러한 전시계획을 관리하면서 을지연습이나 전시합동훈련도 주관했다.

 

그때만 해도 5공 시대라 군부 입김이 거셌다. 민방위국장에는 예비역 대령이 임명되었고 지역사단훈련에는 시청 간부들도 참가해서 사단장에게 브리핑을 해야 했다. 중앙기획위원회라는 정부부서에서 예비역 장군들이 수시로 내려왔고 그때마다 칙사 대접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런 업무는 부산시 본연의 기능에서는 뒷전이었다. 비상대책과는 시청 내 54개과 중에서 제일 꼴찌 부서였다. 과장도 그렇고 계장이나 직원들도 잠시 있다가 가는 부서로 여겼다.

 

매년 을지연습 때가 되면 시청의 모든 부서들은 토굴로 된 전시시설에 들어가서 전시훈련을 했다. 발령되는 통지문(메시지)에 따라 부서별로 대응하는 과정이 반복되는데, 시청의 전부서가 참여하는 일이고 중앙부처에서 점검반도 내려오는 훈련이라 중압감이 상당했다. 몇 개월 전부터 수백 건의 메시지를 고안해 만들어야 했고 사전준비보고회 등 행사준비가 많았다.

 

을지연습은 몇 날 며칠간을 밤낮으로 진행되었다. 다른 부서 직원들은 1박하고 교대를 하지만 주관부서인 우리는 교대할 인력도 없었다. 고위장성 출신인 중앙점검반이 내려와서 애로사항을 물었다.

 

중앙에서 발령되고 있는 메시지가 구체성이 없고 모호한 것이 많아 대응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답을 했는데, 여러 사람 앞에서 내 목소리가 너무 크고 당돌했던지 민방위국장이 깜짝 놀라며 수습했다.

어허, 이 직원이 몇 날 계속 밤샘을 하더니, 조금 흥분한 것 같습니다. 예예.”

 

예산과를 찾아갔다. 그간의 중앙부처 방문기록과 행사관련 문서들을 제시하면서 업무추진비를 책정해달라고 했다. 이런 저런 경비가 드는데 예산이 없어서 직원들 외근비도 챙겨주지 못한다고,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동사무소보다는 구청이, 구청보다는 시청이 예산에 여유가 있다. 시청에서도 시정과나 기획실 등 소위 힘 있는 부서에는 예산이 풍족하다. 예산과 담당자는 꼴찌부서 서무가 안쓰러웠는지, 없던 업무추진비 2백만 원을 책정해 주었다.

 

동사무소에 있었을 때 선배직원이 한 말이다.

내가 주사보(7)인데, 어제 통장 누구가 어이, 박 서기.’하고 부르데. 동사무소에 있으면 직급에 상관없이 다 서기(8)가 되는 기라. 구청에 올라가야 구청 직원이라 하고, 시청에 근무한다고 해야 , 공무원시네요.’ 하거든.”

 

동 서기, 구청 직원, 시 공무원자조 섞인 우스개 속에 묘한 뉘앙스가 숨어있다. 사회의 인식도 그렇지만 직원들의 커리어나 일하는 깊이가 다른 것도 사실이다. 동사무소에서는 임기응변식으로 하는 경향이 많고, 구청은 시청의 지침과 공문에 따라 일하는 실행 부서다.

 

시청은 조금 다르다. 계획 부서다. 정부 시책에도 따르지만 기본적으로는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본업이다. 내가 기안하는 문서는 결재과정을 거쳐 시장의 명의로 각 구청에 지시된다. 항상 법률과 규정을 염두에 두고 틀리거나 잘못된 데가 없는지 거듭 확인해야 한다.

'살아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무원은 담당자 책임  (0) 2020.06.26
청소과 발령  (0) 2020.06.26
여유가 있었던 도로사업소  (0) 2020.06.26
주택사업소 근무  (0) 2020.06.26
구청 총무과  (0) 2020.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