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온 이야기

여유가 있었던 도로사업소

도로사업소는 부산의 외곽지대인 회동수원지 주변에 있었다. 주기능은 부산시내 도로포장공사다. 사업소 내 아스콘 공장에서는 쉬지 않고 가동되었고 매캐한 연기가 퍼졌다. 골재를 실은 덤프트럭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공사현장과 다름이 없었다.

 

부서로는 포장공사를 담당하는 도로과, 공사에 투입하는 굴삭기, 로우더 등의 장비를 운용하는 중기과, 인사, 서무와 계약을 담당하는 관리과가 있었다. 도로과에는 토목직, 중기과에는 기계직들이 소속되어 있으므로, 나는 당연히 행정직들이 있는 관리과에 배치되었다.

 

공무원 생활 20년 중 도로사업소에 있었을 때가 제일 편했다. 사업소 자체가 현장공사 우선이고 관리과는 공사부서를 뒷받침하는 역할이었다. 업무가 단순했다. 업무량에 비해 인력도 넉넉해서 퇴근시간 이후로 일하는 직원이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맡은 일은 사업소 내 각종 장비와 물품을 관리하는 업무였다.

 

물품관리대장을 한 번 정비하고 나니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간간이 사용연수가 지난 중기나 물품을 공매 처분하는 일이 전부였었다. 다른 직원들도 여유가 많기는 마찬가지여서 남는 시간에 외진 실험실 같은 데 모여서 바둑을 두곤 했다.

 

내가 경험한 공무원 근무부서를 보면 세 가지 유형이 있었다. 바쁜 부서에 있으면 진급이 빠르고, 한가한 부서에 있으면 진급이 늦다. 바쁘면서도 진급이 느린 부서에서는 용돈이 생긴다. 첫 번째 유형은 구청 총무과 같은 곳, 두 번째는 동사무소다. 세 번째는 아마 구청 위생과, 건축과 등 사업부서일 것이다.

 

물론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같은 부서에 있더라도 맡은 업무에 따라 다르다. 아울러 소소한 일을 하는 말단 공무원들이 돈이 생겨봤자 큰돈일 수가 없다. 일을 잘 처리해주어 고맙다는, 그리고 다시 불러 일을 달라는 인사다.

 

이럴 때 딱 거절하고 선을 그으면 모가 난다. 나만 청렴결백하고 다른 직원 너희들은 부정부패하다고 지적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게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고 혼자 입을 씻기도 눈치가 보인다. 하여 옆자리 직원들에게 한잔 사게 되는 것인데, 이게 공무원들이 다른 직업군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도로사업소는 한가했지만 내 옆자리 계약담당 직원 둘은 돈이 조금 생겼다. 나는 내 할일이 없어도 그 자리를 넘보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아무런 수고 없이, 또 부담 없이 술도 얻어먹을 수 있으니까. 가끔씩 부서단위 교육 할당이 내려오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기피한다. 나는 매번 자청해서 갔다.

 

공무원교육원에서 교육을 마칠 때는 평가시험을 치는데 매번 상위권에 들었다. 2개월짜리 영어교육도 받았다. 일찍 퇴근해서 아이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고 휴일에는 놀이공원에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나는 198411월에 결혼을 해서 첫째가 딸이고 둘째 아들은 도로사업소에 근무할 때 출생했다. 언젠가 우리 딸이 이런 말을 했다. 자기는 어릴 때 아빠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는데, 지 동생은 그렇지 못해 성질이 좀 못됐다고. 딸이 기억하는 어릴 때가 내가 도로사업소에 근무했을 때다.

 

이후에 근무한 부서들은 대개가 바쁘게만 돌아갔으니, 아이들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마눌은 내가 공무원이라고 해서 출퇴근 시간이 좋을 것 같아 결혼했다고 했는데 말이다.

'살아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소과 발령  (0) 2020.06.26
부산시청에 들어가다  (0) 2020.06.26
주택사업소 근무  (0) 2020.06.26
구청 총무과  (0) 2020.06.26
노가다꾼에서 동서기로  (0) 2020.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