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근무지는 중1동사무소였다. 그런데 중1동사무소에 온 지 두 달도 안 되어 해운대구청 총무과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통상적인 전보기간, 즉 다른 부서로 옮길 수 있는 기간은 2년 이상이었다. 나의 경우 상당히 이례적이었는데 첫 근무지였던 반여2동사무소에서 사무장을 했던 총무과 기획계장이 나를 끌어올린 것이었다. 그때가 1984년 12월 29일, 2개 동사무소 근무 3년 8개월만이었다.
구청 총무과는 나름 일을 좀 한다는 직원들이 모여 있는 부서다. 기획계, 행정계, 새마을계, 회계계가 있어서 직원들은 30명이 넘었다. 동사무소와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동사무소에서는 상관으로 동장과 사무장이 있지만 별로 간섭 받지 않고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했다. 그래서 여유롭고 자유로웠다.
그런데 이곳에선 기안을 하나 하면 계장, 과장, 부청장, 구청장까지 결재를 받아야 했고, 결재과정에서 그 타당성이 심도 있게 검증되었다.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게다가 업무량도 많아서 직원들 대부분이 밤늦게까지 일하는 게 일상적이었다.
기획계에는 계장(6급)아래 주무(7급), 8급 직원 셋, 그리고 9급으로 한사람이 있었는데, 주무는 나보다 2살 많았고, 8급들은 나하고 동갑이었다. 9급 직원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임용일자가 나보다 빨랐다. 공무원은 연공서열 조직이다. 서열이 낮으면 무조건 졸병이다. 각자 담당업무가 있지만 회의 준비 등 공동업무도 많다. 이럴 때 졸병은 먼저 나서서 처리해야 한다.
6개월쯤 지났을 때, 퇴근 후 술자리에서 주무가 말했다. 사실, 계장이 나를 뽑았을 때 자신이 반대했다고 했다. 내 나이가 많아 조직 내 서열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무가 그제야 털어놓은 것은 그간의 내 처신을 보아온 바 마음을 놓았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8급 직원들은 나를 ‘임형’이라고 불렀고, 시킬 일이 있으면 나를 비껴두고 나 보다 선임인 9급 직원을 불러 시켰다. 아무래도 내가 만만치가 않았음이다. 선임 9급에게도, 8급 직원들에게도 미안했다. 나도 불편했다. 모두가 내 탓, 공무원에 너무 늦게 들어온 죄였다.
내가 28살에 임용된 것에 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들어온 이들도 많았다. 10년 차이가 나는 것이다. 동갑나기 8급들이 7급으로 승진할 때 나는 8급이 되었다. 앞으로 그 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질 것이었다. 피라미드 조직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자리가 적어지는 것이므로.
공무원은 직급과 호봉이 같다면 어디서 근무하든 월급이 똑 같다. 그럼에도 격무부서에 자청해서 근무하고 있음은 남들보다 조금 빨리 진급을 하기 위해서다. 총무과 직원들이 그랬다. 같은 과 안에서도 서로 경쟁을 했다. 그들과 한참 뒤처져 있는 나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다.
물론 월급이 다가 아니고 승진도 전부가 아니다. 일하는 과정에서 보람도 느끼고 인정을 받는 데서 자존감도 생긴다. 해운대구의 많은 직원들 중에서 그래도 내노라하는 총무과에 근무하고 있다는 자긍심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공무원은 연공서열이 엄격하다. 총무과 직원들이 승진에 목을 달고 있다했지만 그건 자기 또래 간에 선두다툼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일을 잘하고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1년 선임을 뛰어넘기 어렵다. 반면에 게으르고 무능한 직원도 때가 되면 승진한다. 특별한 사고만 치지 않으면 능력과 근무태도와는 상관없이 근무연수 순서대로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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