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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

1년만 더

67개월 동안 한 부서에 근무하면서 직속상관들인 계장과 과장, 국장은 각각 다섯 사람씩 바뀌었다. 그들은 부임하면서 내게 말했다. 자기와 1년만 더 같이 근무하자고, 그래놓고 본인들이 먼저 다른 부서로 옮겨갔고, 후임으로 온 상관들도 같은 말을 했다.

 

내가 비중 있는 현안업무를 맡고 있었지만, 다른 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관리자가 되고 보면 그 업무에 밝은 숙련된 직원을 원한다.

 

공무원은 직원별로 해야 할 업무가 정해져 있지만, 누구의 업무인지 애매한 일이 많다. 이 직원의 업무와 저 직원의 업무가 겹치는 것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서로 업무를 미루고 다투기도 하는데, 이때에도 상사들은 가능하면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충직한(?) 직원이 맡아서 하기를 원한다. 그래야 본인들이 편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고서가 올라오면 싸인만 하면 되니까.

 

그에 비해 일을 피하는 뺀질이에게 억지로 시켜 놓으면 처리가 될 때까지 불안하다. 잘 하고 있는지, 처리기한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가 늦게 올라온 보고서가 엉망진창이다. 이리저리 고치고 하다보면 결국 자신이 그 일을 처리한 셈이 된다.

 

일반회사 같으면 호통도 치고 인사고과에 반영해서 잘 하는 놈은 월급도 더 주고 못하는 놈은 깎고 해서 도태시킬 수 있겠지만, 공무원사회에서는 그런 거 없다. 직원이나 상사나 한 부서에 오래있을 것도 아니고 다른 부서에 가면 입장이 뒤바뀌어 협조를 얻어야 할 때도 있다.

 

큰소리가 나면 일단 부서의 망신이다. 무슨 일이 잘 안 풀린다는 반증이 되니까. 그저 무난하고 좋은 게 좋은 것이 공무원 조직이다.

 

해가 갈수록 업무가 점점 늘어났다. 한 부서에 오래 있은 죄고 부서 업무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죄다. 이번 일도 내 업무가 아닌데, 지난번에 처리했던 일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맡게 되었다. 그때도 과장의 권고에 못 이겨 한 일이었는데.

 

피로에 피로가 쌓여 3가지 병을 얻었다. 위궤양, 간염, 폐결핵이었다. 내가 이래도 되나 싶었다. 다른 직원들, 똑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여유를 즐기는 그들의 처세가 부러웠다.

 

인사과를 찾아갔다.

다른 이들은 3년 내외면 다들 부서를 옮기는데, 나는 왜 이렇게 두고 있소. 어디 내 인사카드 한번 봅시다. 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겁니까?”

인사과 주무가 불러 말했다.

임재택씨는 청소과장님이 묶어 놓았소. 과장님 허락받고 오소.”

 

청소시설과가 우리 과와 합쳐지면서 그 과의 과장이 우리 과의 과장이 되었다. 새로 온 과장이 나를 불렀다.

 

임주사, 고생한 건 아는데, 내가 곤란해서 말이지, 내가 데리고 온 박○○ 있자나, 임주사보다 많이 고참인데 항상 인사평점에서 밀렸다 아이가. 그런데 내가 여기 과장으로 있으면서도 당신보다 뒤에 둘 수 있나 말이지, 내 입장으로서는 박○○1, 당신은 2번으로 할 수밖에 없네. 양해하소.”

 

서너 달 후 그 고참을 제치고 또 환경국 내 다른 부서에 있는 동기 4명에 앞서서 6급으로 승진했다. 그전에 벌어놓은 평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남들보다 1~2년 빨랐을까. 공무원은 연공서열이 우선이라 그 정도가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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