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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

마눌 이야기

마눌은 평생을 전업주부로 지냈다. 결혼 전에도 직장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래선지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고 내가 얼마나 훌륭한(?) 남편인지도 모른다. 괜히 투덜대는 마눌을 딸이 나무랬다.

 

엄마는 뭐가 그래 불만이고. 내가 사회에 나가보니깐 엄마만큼 편한 사람은 세상에 없더라. 아빠 같은 사람이 어딨노.”

 

, 니 아빠가 이만큼 사는 건 다 내 덕()이다. 내가 복이 많아서 다 내 복으로 니 아빠가 행세하면서 다니는 거다.”

 

아하하! 엄마 너무 웃긴다. 하하하, 엄마, 그라지 마라.”

 

마눌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살을 부린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2014년 말에 내가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다. 밥상을 들고 올 때마다 애고고, 애고고하는 신음소리가 나날이 커져갔다.

 

30여 년간 새빠지게 일만 했으니 이제부터는 놀면서 산에만 다니겠다고 했고, 마눌도 '그러시든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저렇게 시름시름 앓아 누워있으니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다. 퇴직 전에 일자리를 제의했던 회사를 찾아갔다. 오라했던 그때는 안 한다고 큰소리 쳤는데, 퇴직하고 고작 석 달을 쉬고서는 내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내가 다시 직장에 나가자 마눌의 병은 씻은 듯 나아졌다. 회사에서 아침밥을 먹게 되니 마눌은 더욱 좋아졌다.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일어나지도 않는다. 나중에 마눌이 말하기를 어느 점쟁이가 내가 칠십까지는 벌어 먹인다 했다나 뭐라나. 어이구, 이 웬수야.

 

아들 딸이 있을 때는 그래도 집안일을 챙겼는데, 모두 집을 떠나고 나자 마눌은 게을러졌다. 청소도 하는 것 같지 않고 반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눌이 제일 상냥하게 대답할 때가 내가 저녁 먹고 들어간다고 전화할 때다. 하루에 한 끼 차리는 밥상이 그리 귀찮을까. 남편이 밖에서 누굴 만나고 술을 얼 만큼 마시고 돈은 얼마나 쓰는지 아무 관심이 없다. 밥 한 번 안하면 그게 그렇게 좋은 것인가.

 

언제부터 마눌은 새집으로 이사 가기를 원했다. 우리 집은 1998년에 분양받은 아파트다. 오래되긴 했다. 하지만 교통은 그만이다. 백양터널 근처라서 고속도로를 바로 탈 수 있고, 서면에는 차로 10분도 안 걸린다. 창원에 있는 아들이 우리 집에 오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다 하지 않던가.

 

요새 짓는 아파트가 좋긴 하다. 하지만 그 좋은 시설은 모두 입주자 돈으로 짓는다. 아들 딸 다 보내고 둘이 사는 데 놀이터가 왜 필요한가. 연못이나 구름다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차라리 지금 있는 집을 리모델링하는 게 낫지 않은가. 마눌은 납득을 했는지 한동안 잠잠했다.

 

회사에 있는데 마눌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18층이 좋겠소. 24층이 좋겠소.”

 

뭐라, 무슨 말이야. 갑자기.”

 

, 내 여기 분양사무소에 있는데, 당신 좋은 데 말해보소.”

 

아들이 입주한 새 아파트를 보고 온 게 이틀 전이다. 그새 마음이 바뀌어 일을 저지른 것이다. 마눌은 그날 바로 가계약을 하고 왔다.

 

아들 집보고 질투하는 사람이 어딨노. 어이가 없네.”

 

그래, 샘난다. 샘나. 나도 새 아파트에서 한번 살아 볼라요. 와요!

 

나이가 들면 아는 사람은 많아지고 친구는 줄어든다 하더니, 그건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마눌은 갈수록 모임도 많아지고 바빠져 갔다. 그와 함께 마눌에게 받는 문자가 많아졌다. ‘(본인께서) 밖에 나와 있으니 저녁 먹고 오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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