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딸보다 세 살 아래다. 어렸을 때 시샘이 많아서 누나가 그림을 그리면 같이 그리려고 해서 학용품도 같은 걸 사 주어야 했다. 덕분에 글자를 빨리 깨쳤는지 학교 공부는 곧잘 한 것 같다.
꼬마 때는 매일같이 동네 만화방을 들락거렸다. 나는 만화책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루한 동화책보다 재미있는 만화책이 훨씬 낫다. 당시로는 큰돈을 들여 ‘드래곤 볼’이라는 만화책을 전집으로 사 줬다.
비디오가게에도 단골손님이 되었다. 보고 싶은 만화영화는 거의 다 빌려봤을 거다. 비디오기기가 고장이 났을 때는 아주 안달을 해댔다. 비디오기기는 아들 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돌려댔던지 자주 고장이 났다. 몇 번 수리를 하다가 새것으로 사주어야 했다.
그러다가 게임으로 갈아탔다. 게임 역시 초창기라 게임기기와 입력 칩은 따로 있었고, 다른 게임을 하고 싶으면 칩을 바꿔야 했다. 모든 칩을 다 살 수 없으니, 내 칩을 주고 다른 칩을 사면 반값에 살 수 있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칩을 바꾸러 갔는데, 그때는 나와 동행해야 했었다. 가게도 멀었고 칩 값도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당시 비디오 빌리는 데는 1,000원, 게임 칩을 교환하는 것은 15,000원쯤 되었을 거다.
녀석은 가게에 갈 때마다 장고를 했다. 이걸 할까, 저걸 할까 한참을 망설였던 것이다. '오늘은 이걸 하고 다음은 저걸로 바꾸면 될 것을, 참으로 신중한 놈이로구나, 머슴애가 너무 조심스럽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결정을 기다리는 점원이 안스러워 독촉을 했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리 섧은지 엉엉 소리를 내면서.
초등학교 3, 4학년이었을 때였을까. 퇴근길에 아들과 마주쳤다. 태권도 도장에 갔다가 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너 임마, 니 같이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애가 또 있겠나. 나중에 느그 아들에게도 그래 줄 수 있겠나?"
아들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히이~, 저 그럴 수 없을 거 같아요. 자신 없는데요. 헤헤...”
먹성 좋은 딸과는 달리 아들은 입이 짧았고 키가 작았다. 철마다 보약을 달여 먹이면서 아내는 한탄했다.
“애고, 우리 채우가 일 미터 칠십은 돼야 할 낀데...”
초등학생 아들은 물정 모르고 헛꿈을 꾸는 엄마를 퉁명스레 나무랬다.
“엄마도 참, 아빠 엄마가 작은데, 내가 그래 크겠나.”
하지만 지금의 아들은 엄마가 기대했던 것보다 키가 더 컸고 덩치도 제법 붙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일까. 아내가 울상을 하고 내게 일렀다. 아들이 학원을 그만 두겠다하니 야단 좀 쳐 달라는 거다. 아들을 불러 앉혔다. 아들은 학교 숙제도 해야 하는데, 학원에서도 숙제를 많이 내어 힘들다 했다. 보아하니 입시학원이라 스파르타식 교육을 하는데 아들은 이를 못 견뎌한다. 두 말 않고 그만두라고 했다. 아내는 실망했지만 아들 얼굴은 활짝 펴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쯤, 학교 성적을 물었다. 아들은 반에서 3등에서 5등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니, 그래가지고 인문계 가면 틀림없이 백수 된다. 전문분야 가라.”
아들은 좋아라 하고 물러났다. 공부를 열심히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입시 전까지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 실컷 하다가 부산대학 공대에 들어갔다.